실비아는 누가, 왜 만들었을까?

할머니의 치매 걱정을 덜어주고 싶었던 한 의대생 손녀로부터 시작됐습니다.

May 1, 2021

의대생 고명진의 창업 스토리


2019년 말, 지인의 도움으로 회사(그 당시에는 프로젝트)에 대한 인터뷰를 진행하였다. 내가 2020년 7월 24일 법인을 설립하고 정말 많은 사람들이 내가 왜 창업을 하게 되었는지 물었고, 최근에도 동일한 질문을 듣게 되며, 2019년 진행했던 인터뷰를 다시 읽고 추억하며 여기에 스타트업 스토리를 작성해 보려 한다.
 

창업을 왜 했나요?

답은 정말 "우연히"였다. 나는 창업을 계획한 적도, 공부한 적도 없다. 나는 내가 발견한 문제를 내가 직접 풀고 싶었고, 이를 동참할 용기 있는 동료들을 하나 둘 찾으며 법인이 세워졌다(;;) 사업자등록증이 뭔지도, 법인 정관이 뭔지도 몰랐던 시절.. (mac 유저라 공인인증서조차 거대한 장벽이었음)
내 열정만 앞세워 조직 안에서 감정적으로 대응하고 나와 회사를 동일시하던 풋내기 시절도 있었다.하지만 서당개 삼 년에 풍월을 읊듯 지금은 다행히 '법인'에 대한 이해를 키웠고 (반년 걸림) 총 10명이라는 팀원과 함께 더 나은 조직에 대한 고민, 회사의 비전에 한걸음 더 나아가기 위한 전략에 대한 고민을 끊임없이 이어가고 있다.
전문가가 아니어도 된다. 방향성만 있다면.. 고명진
 

 
이걸 작성하는 나 자신도 오글거리고 영문이든 한국이든 글쓰기에 정말 약한 나지만 훗날 이 블로그의 독자들이 (target readers: 창업에 관심 있는 사람, 창업에 관심 있는 의대생, 할머니 할아버지 좋아하는 사람 등) 내가 발견한 거대한 문제, 그 문제를 푸는 과정에서 만난 무수한 작은 문제, 그리고 크고 작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발버둥 친 내 경험을 통해 작은 영감을 얻었으면 좋겠다.
 

1. 창업의 시작: 소소하지만 세상을 밝히는 아이디어

내가 창업을 하게 된 가장 큰 출발점은서울대학교 의과대학과 디캠프 가 공동 주관한 미니데모데이 행사였다. 당시 나는 창업 동아리에 속해 있지도 않았고, 창업, 사업, Startup의 s자도 모르는 일명, 초짜였다. 하지만 내가 데모데이에 나간 이유는 간단했다. 데모데이 포스터에 있던 문구가 나를 끌어당겼기 때문이다. (그만큼 카피라이팅이 중요한 것 같다. 마케터분들 존경한다.)
"소소하지만 세상을 밝히는 아이디어"
 
아마 "세상을 밝히는 아이디어" 만 있었으면 안 나갔을 것이다. 앞에 "소소하지만" 이 있어서 나 같은 생초보도 신청해 볼 만한 공모전 같았고 (아 다르고 어 다르기 때문에 잘 짜인 a/b 테스트는 정말 중요한 것 같다.) 그동안 내 마음속, 내 머릿속에 품고 있었던 아이디어를 마음껏 발산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2. 소소한 아이디어의 시작: 스무 살과 서른 살 사이 나의 삶과 경험

나는 태어났을 때부터 할머니 할아버지 손에서 키워지고 자랐다. 우리 조부모님의 50대부터 80대까지의 삶의 여정을 함께하며 노화 과정에서 누구나 직면할 수 있는 다양한 신체 심리적 문제들을 목격했다.
그래서 그런지 초등학교 때는 '애늙은이'라는 소리를 듣고 (내 서울대 의과대학 자소서에도 등장!) 아날로그에 대한 애정이 깊어졌으며 (나는 종이책이 좋다. 근데 현실은 IT 스타트업 운영 중) 노인과 노화에 대한 관심이 자연스레 많아졌다.
나의 노인에 대한 관심은 계속 이어져 프린스턴 대학교에 경제학과에 재학 중이던 시절, 대학교 3학년 때는 일본의 고령화 현상이 경제 성장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주니어 페이퍼(JP라고 부른다)와 대학교 4학년 때는 중국의 편부모 가정 어린이 교육에 조부모가 미치는 영향에 대한 졸업논문을 집필하였다.
그리고 서울대 의과대학 본과 2학년 의학 연구 수업을 들었을 때는, 대표적인 노인 퇴행성 뇌질환 중 하나인 파킨슨병에 대해 조사하였다. (다이내믹한 삶을 살았던 것 같은데 돌이켜 보면 상당히 일관성 있다.)
노인과 교육 불평등에 관심이 많았던 나는, 의대에 들어온 후 '다문화 가정 어린이 멘토링'과 '독거노인 방문진료' 봉사를 참여하였다. 다문화 가정 어린이 멘토링은 주 1회 '마리아'라는 친구에게 초등학교 5학년, 6학년 수학을 가르쳐 주었다. 그리고 마리아와 이야기 나누는 순간이 의대에서 힘든 감정을 느낄 때마다 나를 버티게 만드는 버팀목이 되어 주었다.
나는 그 당시 주 1회 어린이 멘토링에 대한 만족도는 상당히 높았는데, 독거노인 방문 진료 봉사에 대해서는 한 가지 의문점이 있었다.
 
나는 노인에 대한 관심이 누구보다도 높은데 왜 이 봉사를 참여한 후에는 무언가 공허한 느낌이 들까. 진료 봉사 직후
 
봉사는 간단했다. 의과대학, 간호대학에 속한 학생 봉사자는 홀로 사시는 어르신의 집에 직접 방문하여, 어르신께 최근 건강 상태에 대해 여쭤보고 휴대용 혈당 측정기로 혈당을 재고, 혈압을 잰 후 이전 기록 옆에 수치를 기록하는 일이었다. 그리고 어르신 집을 나서기 전에는 어르신께서 요청한 의약품을 전달하였다. 어르신들은 찾아와서 함께 이야기를 나눠 주는 것만으로도 고맙다고 하셨다.

3. 소소한 아이디어의 발전: 봉사활동에서 발견한 문제

함께 이야기를 나눈다는 것.

나는 '대화'는 곧 '관계'의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길을 오가며 몇 마디 대화를 나눈 것만으로도
나에게 소중한 인연이 되어준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았다.
예를 들어, 프린스턴 대학교 3학년 시절, 백혈병 어린이를 위한 무료 나눔 음악 콘서트를 기획하던 당시, 홍보를 위해 무더운 여름 홍대 한복판에서 나 홀로 버스킹을 하고 있었을 때, 버스킹을 구경하던 한 부부가 나에게 말을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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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인디 다큐멘터리를 찍고 있습니다. 저희가 공연 영상을 무료로 찍어드리고 싶은데 괜찮을까요."
 
처음 보는 낯선 이가 호의를 베풀어도 들으면 안 된다는 우리 할머니의 말씀이 생각났다. 하지만 나는 그분들과 대화를 나누었고 (ㅋㅎ), 그 대화 속 몇 마디가 그분들과의 인연으로 이어져 무료로, 퀄리티 높은 공연 준비 영상과 공연 영상을 찍을 수 있었다.
그 덕에 아직까지도 그 당시의 소중한 기억을 영상으로 간직하고 있다. 이와 같은 일들을 몇 차례 겪은 나는, (긍정적인 일 & 부정적인 일) 말 한마디로 나의 편을 만들 수 있고 나의 적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다시 독거노인 방문진료 봉사 동아리 이야기로 돌아오자.. (많은 생각들이 빠르게 지나가 이야기가 삼천포로 자꾸 빠지는 현상을 의학용어로 flight of idaea라고 부른다.)
 
어느 날 내 봉사 그룹이 찾아뵈었던 한 어르신이 물었다.
"저번에 왔던 그 듬직한 청년은 어디에 갔는가..?"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어르신의 설명을 듣고 대강 누군지 유추할 수 있었다. 그리고 어르신의 목소리에서 어르신은 그 선배를 그리워하고 있다는 것 또한 알 수 있었다.
나는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어르신의 혈압과 혈당을 기록에 남기고 할당받은 파스를 나눠주려 하는 내 손의 움직임 또한 덩달아 둔해졌다. 나는 그때부터 '관계 형성'의 복잡성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다.
 
생각해보면 '봉사'라는 행위는, "제공자" 과 "제공받는 자"로 구성되는 일방향적인 인상을 가진다. 우리는 괴롭힌 가해자를 오래 기억하듯 (정작 가해자는 기억 못 하는 경우가 많지만..),
 
우리에게 고마움을 느낀 대상 또한 우리를 오래 오래 기억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선배를 그리워하는 것일까. 일회성의 만남을 통해 고마움을 느끼게 만들고, 사라져서 남는 것이 그리움과 상처라면, 우리는 이를 결과적으로 선행이라 볼 수 있을까. 생각해보니 다문화 가정 어린이 멘토링의 경우, 매주 동일한 아이를 만나고 있었기 때문에 이에 대한 고민은 크게 없었다.
독거노인 방문진료 봉사를 할 때 우리는 매번 다른 어르신을 찾아뵈어 기본적인 건강을 체크하고 생필품을 챙겨드린다. 하지만 우리는 그들이 진정으로 필요로 하는 것을 제공하고 있을까.. 내가 예전부터 느꼈던 어딘지 모를 공허함의 출처를 알 것만 같았다.
마음속이 꿈틀거렸다. 우리는 어르신의 건강을 증진하고 싶다. 어르신과의 관계 또한 소중하다.우리가 주기적으로 동일한 어르신께 전화를 드리는 '전화 기반 의료 봉사'가 있다면, 어르신과 꾸준한 관계를 쌓을 수 있지 않을까.

4. 소소한 아이디어의 실행: 열정과 타이밍

4-1. 의대생의 관점
의대를 다니며 한 가지 깨달은 것은, 봉사 활동 전에 꼭 중요한 시험이 끝난다는 것이다. (*꼭 다이어트 결심하면 외식 약속 잡히더라..) 심지어 평소 노인 봉사를 하고 싶어도, 노인 관련 봉사는 수업 시간과 겹쳐서 참여하기가 힘들다.
끊임없이 반복되는 시험 공부를 하다 보면 결국 주말에도 집에 못 가고 공부만 하게 된다. 따라서 시험기간이 끝났을 때, 봉사활동 vs 집에 가서 우리 할머니께서 차려주신 밥을 먹는 것. 이렇게 두 가지 선택지가 있을 때 나는 사실 고민도 하지 않고 집을 택했다...
의대생들이 저마다 봉사 활동에 대한 니즈를 가지고 있지만 위와 같은 고민되는 상황으로 인한 심적 / 시간적 부담이 결국 봉사자의 이탈로 이어지고 있었다. 나는 이를 해결하기 위한 한 가지 방안으로, '집에서도 참여할 수 있는 전화 봉사' 가 떠올랐다.
4-2. 어르신의 관점
내가 원하는 전화 봉사 기획을 위해서 아래 조건들을 만족해야 했다.
조건 1: 어르신에게 지속적인 관계는 중요하다.
조건 2 : 전화 통화로도 의학적 가치를 창출할 수 있어야 한다.
혈당을 재 드리는 것, 혈압을 재 드리는 것은, 집에서 하는 의료 봉사로는 조금 힘들 수 있게 되었다.
본과 1학년 때는 해부학, 생화학, 생리학 등 기본적인 학문 위주로 배워 다양한 질환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였기 때문에 전화로 도움을 줄 수 있는 질환은 딱 떠올리기는 힘들었지만 한 가지 확실하게 알았던 것은, 우리 할머니를 포함하여 내가 만나 뵈었던 거의 모든 어르신분들이 공통적으로 가장 두려워하고 계셨던 질환은 암이 아닌 '치매' 였다는 사실이다.
이렇게 나는 본과 2학년에 진급한 후, 치매에 대해 탐구하기 시작하였다. 내 머릿속은 온통 "전화 봉사를 통해 치매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으며 어르신분들에게, 그리고 의대생 양측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맴돌았다.
4-3. 해결책
위와 같은 치매에 대한 고민이 이어지던 중, 미국에서 발간한 치매 연구 세 편이 눈에 들어왔다.
"음성을 통한 치매 진단 가능성"
"치매 초기 증상, 말투 상의 변화가 미묘하게 발생"
Wisconsin-Madison 대학 연구진의 논문이었다. https://csd.wisc.edu/event/prosem-20180129/
"세대 간의 프로그램, 치매 환자에게 도움이 될 수 있어.." ttps://pubmed.ncbi.nlm.nih.gov/19192238/
세대 간의 전화 봉사 프로그램을 제작하여, 위와 같은 기술을 활용한다면, 많은 어르신들이 집에서도 치매 조기 진단과 예방 두 가지를 누릴 수 있지 않을까?
이를 통해 의대생은 어르신에게 집에서도 의학적인 도움을 드릴 수 있고, 어르신은 의대생과 장기적인 관계를 맺으며 생활 속 활력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해당 아이디어가 떠오른 후, 집에서 하는 원격 봉사 프로토콜을 구상하기 시작했다. 인지 자극 및 인지 재활에 대한 논문을 차곡차곡 쌓아가며 이해를 높이고, 원격 봉사에 대한 승인을 받기 위해 공공기관 몇몇 군데의 문을 두드려 보았지만... 이때는 코로나 사태가 시작되기 전이라 정말 정말 쉽지 않았다...ㅠㅠ
"원격 봉사하시려면 의대생이 저희 기관에 와서 기관 내 전화를 사용하여 어르신께 전화를 드려야 합니다."(???)
"어르신이 한 번도 보지도 못한 학생 전화를 받는다고요? 말도 안 돼요."
수많은 거절을 당하고, 이러한 상황이 익숙해질 무렵.. 나는 서울대학교 기초 의학 연구실 건물 게시판에서 <소소하지만 세상을 밝히는 아이디어> 포스터를 발견하였고, 그렇게 세상을 밝히기 위한(?) 나의 도전은 시작되었다.